에디 베더는 정말로 마당발이고 친구가 많다는 것이 내 인상이었다. 콘서트 중에 친구들에게 바치는 노래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이 곡을 가장 쩌는 송롸이터이자 작가 중 한 명인 내 친구, 닉 케이브Nick Cave에게 바친다!"라고 소리치더니 신곡 'gonna see my friend'를 해주었다(서점에 닉 케이브란 작가의 소설이 많았는데, 그 닉 케이브가 그 닉 케이브였다!). 그 외에도 Mudhoney의 멤버 Matt lukin에게 한 곡, 또 누구에게 한 곡 씩 해준다.
거기에 한 술 더떠 친구까지 불러서 다른 뮤지션을 노래를 커버하기도 한다. 이번 멜번 공연의 경우에는 닐 영Neil Young의 'the Needle and the damage done'과 더 후the Who의 'Baba O'reily'를 커버했고, 서포트를 해 준 벤 하퍼와 리암 핀과 따로 몇 곡을 같이 불렀다. 뉴질랜드 콘서트에서는 닐 핀이 직접 나와서 함께 Split Enz의 곡을 커버 했다고 한다. 친한 사람들과 에디 베더의 인상부터가 서글서글한 옆집 아저씨 같은 것이, 공연 끝나고 만나서 맥주 한 잔 사돌라고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펄 잼은 라이브를 길게 하기로도 유명하며, 다른 뮤지션들과 많은 곡을 부르고 커버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이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이 친구들은 한 콘서트에서 30곡 정도를 해주며, 올 해 북미 투어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필라델피아에서는 무려 42곡을 해주었다고 한다. 무려 데보devo의 'whip it'을 커버했다는데 나로서는 그림이 잘 그려 지지 않는다-_-;; 필라델피아 콘서트에 갔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본전 뽑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나중에는 막차가 끊겼을 고민을 해야 했을 거다.
무엇보다도 에디 베더는 공연 중간 눈에 띄게 관중의 상태를 꼬박 꼬박 체크한다. 나만 해도 몇 번은 들었다. '그 앞에, 너무 쫍지는 않어요?' '거기 괜찮아요? 물 있으니 물 충분히 마셔요' '진정들 하시고, 끝까지 조심하세요' 등등.
에디 베더를 이렇게 소심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덴마크 로스킬데Roskilde 페스티벌 때의 비극일 것이다. 2000년 6월 30일, 로스킬데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였던 펄 잼의 공연 도중 광분한 관객들이 페스티벌 사이트로 갑자기 밀어닥치는 바람에 앞 줄의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연을 멈춰달라는 통보를 받고 펄 잼이 공연을 멈추었을 때는 이미 9명이 압사한 뒤였다. 유럽의 락 페스티벌 중 가장 시설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로스킬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곧바로 전 유럽의 페스티벌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글래스톤베리는 (물론 전해에 담장이 무너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페스티벌 사이트를 개선하기 위해 2001년을 쉬었으며, 그 외 다른 페스티벌들도 서둘러 보안-안전 조치를 강화했다.
펄 잼에게는 충격이 컸을 것이다. 사고 초기 펄 잼은 사고의 원인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으며, 그 해 여름 그들은 남은 투어를 취소 할 수 밖에 없었다. 은퇴까지도 고려했으나 겨우 두 달 후에 그들은 다시 북미 투어를 재개한다. 3년 후에 나온 곡 'love boat captain'에서 펄 잼은 그 사고를 이야기 하고 있다. "Lost 9 friends we'll never know... 2 years ago today." 만일 오늘 그 곡을 펄 잼이 불렀었더라면, 가사는 2 years ago가 아닌 10 years ago가 되었을 것이다.

Backspacer 투어답게, 펄 잼은 많은 신곡들을 들려주었다. 펄 잼의 이번 앨범은 영 힘이 딸리던 근래 다른 앨범들에 비해 오랜만에 전성기에 필적할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피치포크는 4.6점을 주었으나) 매체의 평가도 후했고, 대중들의 반응도 좋았다. 콘서트에서도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나 첫 싱글 the fixer와 어쿠스틱 발라드 just breathe가 인기가 많았다. 직접 듣기 전까지 나는 에디 베더가 그 걸죽한 목소리로 발라드를 부른다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았는데, 내 예상을 깨고 너무나 괜찮은 노래였다.
마지막 곡인 Yellow Ledbetter의 죽여주는 기타 리프가 흘러 나오면서 아레나 전체의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3시간이 넘게 환상적인 시간을 즐겼다. 여행을 나와서 첫번째 콘서트였는데 졸았다는 것이 분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펄 잼의 공연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기도 하였다. 앞으로는 콘서트는 무조건 스탠딩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옆에 앉은 할아버지와 다른 관객들과 Yellow Ledbetter를 흥얼거리고 아직도 열기로 후끈거리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나섰다.
언젠가 '펄 잼은 살아서 전설이 되었고, 너바나는 죽어서 신화가 되었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혹자는 펄 잼은 떠나야 할 좋은 시기를 잡지 못했다며, 에디 베더가 자살했다면 너바나보다 더 명성을 얻었을 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펄 잼의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그 것이 더없는 개소리라는 것을 느꼈다.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죽고 나서 불멸의 신화 자리에 오르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 이상 커트 코베인의 라이브는 볼 수 없지만 오늘 나는 이렇게 펄 잼의 라이브를 보고 에디 베더의 even flow를 듣지 않았나 말이다.
그리고 펄 잼은 그렇게 약한 밴드가 아니다. 로스킬데의 사고를 거치면서도 2달만에 다시 투어를 한 강한 사람들 아닌가. 펄 잼은 살아 있는 한 계속 콘서트를 열고, 30곡을 부르고,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또 앨범을 낼 것이다.
2009-11-20, Pearl Jam at Etihad Stadium, Melbourne Setlist
(from Setlist.fm)
1. Elderly Woman Behind The Counter In A Small Town
2. Corduroy
3. Animal
4. Got Some
5. Brother
6. Amongst The Waves
7. Even Flow
8. Oceans
9. Lukin
10. Green Disease
11. Force of Nature
12. Present Tense
13. Gonna See My Friend
14. Given To Fly
15. Daughter
16. Glorified G
17. The Fixer
18. Do The Evolution
Encore:
19. The Needle and The Damage Done (Neil Young cover)
20. Just Breathe
21. Red Mosquito (with Ben Harper)
22. Indifference (with Ben Harper)
23. Jeremy
24. Deep
25. Why Go
26. Porch
Encore 2:
27. Throw Your Arms Around Me (Hunters & Collectors cover) (with Liam Finn)
28. Black
29. Spin The Black Circle
30. Alive
31. Baba O'Riley (The Who cover)
32. Yellow Led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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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펄 잼은 팬들이 불법 부틀렉을 사서 돈을 날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2000년 투어부터 자신들이 직접 부틀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공연 라이브를 CD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Pearl Jam Official Bootlegs'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미 200장이 넘는 부틀렉이 나왔으며, 나 또한 제대로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3주 후 팬 사이트(Ten Club)에서 멜번 공연 라이브를 (물론 유료로) 받았다. 이어폰을 귀에 꼽자 관중들의 함성 소리 사이로 에디 베더의 'Good Evening!'이 들려온다. 아시발... 왜 내가 이걸 졸았지...











덧글
남은거(많이 남았지만;;) 런던이나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나 읽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