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뒷골목에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movie


 내가 작년 영국 여행 때 무리하게 시간을 쪼개가면서 브리스톨Bristol에 간 것은 단순한 치기는 아니었다. 런던이나 리버풀에 비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어두침침한 항구 도시는 의외로 매력적인 문화 도시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며, 몽환적인 사운드로 90년대 영국의 주류 음악 차트를 휩쓸었던 트립합Trip-hop 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브리스톨에서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것은 침체한 항구도시 브리스톨을 문화의 중심으로 바꿔준 스트리트 아트의 거장 뱅크시Banksy의 작품이었다.

 김시습부터 에곤 쉴레까지, 어느 시대에나 고독한 천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마을 구석구석까지 인터넷 망이 퍼져있는 지금 시대에도 그런 천재는 있다. 뱅크시는 은둔한 천재의 대표적인 현대의 예로, 고향 브리스톨에서 그래피티를 시작한 1990년부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굴과 목소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뱅크시는 카메라 앞에 나선 적이 한번도 없었고, 그에 대한 자료는 전무한 편이었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는 그런 뱅크시가 출연하고 감독하는 유일한 영화이다. 물론 모자이크 처리에 변조된 목소리이긴 하지만, 뱅크시의 입으로 듣는 스트리트 아트의 진짜 모습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현실적인 스트리트 아트의 모습 전체를 보여준다.

 항상 카메라로 뭔가 찍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티에리Thierry라는 사내가 있었다. 프랑스에 살던 사촌이 우연히 스트리트 아트 작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사촌을 따라다니며 그의 작업을 카메라에 담는다(이 사촌의 예명은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였다. 이 친구의 귀여운 작품은 대전시립미술관에도 있다). 함께 일을 돕기도 하고 자기가 살던 LA로 사촌을 초청하기도 한 티에리는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더욱 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을 만나게 된다.
 모든 중요한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스트리트 아트는 건물의 외벽이나 담벼락에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며 대부분은 법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행된다. 그렇기에 그려진 작품들은 공무원이나 벽주인에 의해서 지워지거나 훼손되기 일쑤였고, 새롭게 등장한 이 예술 장르는 그 탄생을 기록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티에리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오베이OBEY, 제우스Zeus, 론 잉글리쉬Ron English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카메라에 담았고, 호기심으로 그들을 찍기 시작한 그는 어느덧 스트리트 아트의 전기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전기는 뱅크시를 만나면서 그 정점을 찍게 된다. 루브르와 대영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도둑 설치하고 팔레스타인의 장벽에 스텐실을 찍으면서 이미 차세대 미술가로써 엄청난 집중을 받은 뱅크시는 티에리에게 그의 모습을 찍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벽에 그린 작품>

 이렇게 성공적인 개인전을 통해 수집가들과 평론가들이 뱅크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다. 상업화를 통해 안티예술이 상업예술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에서 우리 시대의 로빈 후드가 염증을 느낀 것과 달리 티에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자신도 아티스트로써의 성공을 바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티에리가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라는 이름으로 스트리트 아트를 시작하고 뱅크시가 티에리의 필름을 넘겨받아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찍고 찍히는 자의 관계가 역전된다. Mr. Brainwash의 작업은 ‘창조’보다는 ‘생산’에 더 가까워서, 큰 스튜디오에서 전문적인 팀을 끌어모아 마구잡이로 스텐실 판화를 찍어내게 한다. 이것이 진정한 스트리트 아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결과는 어땠을까?
 5일로 계획되었던 Mr. Brainwash의 첫 번째 개인 전시회 ‘Life is Beautiful’은 두 달 동안 연장 전시되었고, 티에리는 미술품을 팔아 100만 달러 가량을 벌어 들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 뱅크시는 말한다. “워홀은 유명한 아이콘들을 아무 의미 없이 반복하여 자신의 위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그의 상징적인 방법이었다. 티에리는 그것들을 정말로 의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티에리, 혹은 Mr. Brainwash의 모습>

 영화는 변해 버린 스트리트 아티스트들과 티에리-Mr. Brainwash의 관계를 나레이션으로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Mr. Brainwash는 그들의 작업을 단순한 돈의 단위로 치환시켜 버렸고, 그들은 더 이상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뱅크시가 Mr. Brainwash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스트리트 아티스트를 위하여 세상에 이야기하는 고발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일가? 새로운 예술적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뱅크시는 천재인가? 새로운 생산 방법과 돈벌이 수단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티에리는 천재인가?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즐거운 시작부터 지금의 혼란까지, 스트리트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앞으로의 스트리트 아트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변질된 예술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해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다. 지금의 나로써는 백남준의 마지막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예술은… 사기네.



 - 이것도 급하게 쓴 영화리뷰. 사실 이건 어제 새벽 4시에 보고 오늘 두시간만에 겨우 썼다. 역시 반찬은 시장이 제일이고 글쓰기는 마감이 제일인 것 같다. 졸문이라 참 부끄러운데... 블로그가 아카이브라서 죽 올려놓는다.
 - 그건 그렇고 티에리 저새낔ㅋㅋㅋㅋ 처음 봤을때부터 존나 사기꾼같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엌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이 사기꾼새낔ㅋㅋㅋㅋ

덧글

  • anarchitect 2011/12/08 00:20 # 답글

    ㅋㅋㅋ글의 말미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 kidsmoke 2011/12/08 03:53 #

    완전 사기꾼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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