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한 처음 두 주 간은 이런 스케쥴로 하루 평균 열 시간씩 일했다. 특히나 바쁜 토요일에는 점심 서빙을 포함하여 열 두 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시급제인 아르바이트라 할 수 있을 때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쉬지 않고 일하자 몸이 삐걱대는 것이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나고나서도 휴일이 나오지 않자 마침내 나는 사장에게 그 문제를 따지러 갔고, 그제서야 나는 휴일은 사장과 상의해서 정하는 사안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11월 20일, 펄 잼 콘서트가 있는 날에 첫번째 휴일을 받기로 했다. 일을 시작한지 열흘 만이었고, 이 글을 시작한지 열두 포스트만이었다.
사실 펄 잼Pearl Jam은 나와 친한 밴드는 아니다. 목에 가래가 낀 남자들이 시애틀에서 그런지 씬을 만들고 있을 때(아니, 이 장르명은 정말로 잘 지은 것 같다니까!) 나는 겨우 걸음마를 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펄 잼의 멜번 공연은 내가 외국에 나와 처음으로 본다는 의미가 있는 콘서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공연은 거대한 에티하드 스타디움Etihad Stadium에서 열렸고, 나는 멤버들이 코딱지만하게 보이는 3층 구석으로 올라갔다. 피자와 맥주를 채우고 자리에 앉았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아마 열흘 연속으로 일한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나보다. 무대에서는
----
가뭄에 단 비처럼 찾아오는 휴일을 제외하면 내 시간의 대부분은 레스토랑에서 흘러갔다. 레스토랑에서 열흘 정도 일을 하고 나니 행동이 굼뜬 나도 점점 레스토랑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안면을 쌓기 시작했다.
언제나 식당에 있는 아키는 머리에 두르는 수건, 고르지 못한 치열, 멀리서도 보이는 숭숭뚫린 모공, 심지어 적절한 위치에 난 사마귀까지 정말로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일본인 주방장이었다. 그가 오래된 회칼로 연어에서 뼈를 발라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는 내가 와 있는 나라를 착각할 정도였다. 안색이 별로 좋지 못하고 숨을 몰아 쉬는데다 얼굴이 푸르딩딩한 경우가 많아서 나는 아내한테 두드려맞고 사나 하는 공상도 하곤 했다.
그에 비해 사장 히로는 땅딸막한 키에 몸집이 다부진 사람으로, 목이 없이 얼굴과 몸이 붙어 있었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여 있는데 머리는 항상 짧게 쳐서 꼭 전직 야쿠자 간부같은 인상을 풍긴다. 심심하면 점원을 향해서 소릴 질러 대는데 매우 크고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이 곳에서 일본인은 다 조용하고 사근사근하다는 내 인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러다가도 부킹 전화가 오면 “예쓰~ 오 예 오프 코쓰 오프 코쓰~ 덴 시 유 앳 세븐 어 클락~ 바이” 목소리가 180도 달라진다.
그의 주된 취미는 한국 사람 부려먹기였다. 시도 때도 없이 한국인 대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많이 하곤 했는데, 내가 지각한 이튿날부터가 시작이었다.
”한국 사람은 그렇게 다 시간을 안 지켜? 한국 사람은 선배 같은 것도 없나? 유 돈 노 쎈빠이? 한국인은 이렇게 시간에 늦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일본인은 안그래.”
이런 스타일의 화법은 무수한 변용을 거쳐 다양한 어록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식이다.
"체력이 딸려? 쓰레기 봉투 그거 하나를 바로 못 버려? 한국인은 체력이 그렇게 약하나? 운동 같은 거 안해? 언제나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우리 일본인은 안그래."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나에게)
”한국인은 이렇게 거짓말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일본인은 안그래." (이건 예전에 일하던 사람 이야기)
”한국인은 일본음식의 메뉴를 모를지 모르지만, 우리 일본인은 안그래(?).”
심지어는 점심을 적게 먹으니
”한국인은 이렇게 적게 먹고 배부를지도 모르지만, 우리 일본인은 안그래(???).”
새끼가 돌았나.
이런 훌륭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장을 위하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은 사장에게 ‘친놈미’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대부분의 한국말을 알아듣기 때문에 도치법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단다. 레스토랑 종업원의 반 이상은 한국 사람이었고, 같이 일하는 중국인, 일본인, 호주인 중에서 제일 천대받는 것도 한국인이었다. 한번은 내 옆 침대를 쓰는 샘Sam 형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니 형, 왜 우리만 이렇게 존나 욕을 먹어요? 일본인은 자기 나라니깐 그렇다 치고, 호주친구들도 영어를 잘하니깐 필요하다 치고. 중국인은요?”
”너 우리 레스토랑에 오는 중국인 손님들 못봤니? 꽤 많잖아?”
”예.”
”중국인이 여기서 얼마나 쎈데. 여기 일하는 중국 친구들이 다 여기 가까이에 살아. 다 가족들이야. 얘네 화나면 꼼짝을 못해.”
”아, 그래요?”
”쟤 있잖아(장어덮밥을 만드는 첀Chan을 가르킨다). 쟤도 성질 얼마나 더러웠다고. 2년 전엔가 예전에 친놈미가 하도 지랄을 해대니깐 쟤가 사장한테 ‘히로, 그거 알아? 넌 정말 씹쌔끼인 것 같아Hiro, you know? You’re Fucking Idiot’ 소리치고 곧바로 뛰쳐 나갔잖아.”
”으잌ㅋㅋ 개쩌네욬ㅋㅋ”
"친놈미가 그 후에 사정사정을 한 후에야 첀은 다시 돌아와서 지금처럼 일하고 있는거지."
어, 내 이름 계속 왜불러?하고 타코야끼를 만들던 첀이 돌아본다. 아, 아무것도 아냐.
"어쨌든 너무 상심하지마. 사장이 너한테만 미친놈 소리듣는 건 아니니깐."
사장의 성격이 더러운 탓도 있었지만, 실은 그만큼 한국인의 위상이 여기서는 낮았다. 영국에 이어 두번째로 사람을 많이 보낼 정도로 한국인 워홀러는 많았지만, 실제로 향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성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다들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여행도 하면서 세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들떠서 온다. 그런데 막상 와보면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데다 너무 외롭다. 결국 워홀러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들과 어울리게 되고 영어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돈만 하릴없이 쓰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호주에 도착해서 일주일만에 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넌 정말로 운이 좋은 거야, 챙. 얼마만에 일을 구했어?”
”도착해서.. 음… 두 주요?”
”와, 두 주만에? 넌 대박인거야. 난 와서 2달도 넘게 고생했어. 요즘은 불황이라고 오씨 친구(Aussie:호주인의 별칭)들도 일 못 구한다고 난리인데, 넌 진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물론 운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버텨내면서 직업을 구했고 일도 하고 있다는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집에 전화를 걸어서는 어머니, 욕먹고 더러운 꼴 보고 있지만 어쨌든 일도 구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하이고, 그럼 돈 버는 일이 쉬운 줄 알았나?”
”…”
”마... 사내새끼가 그거 못 견딜 것 같으면 그냥 집에 돌아오지 말거래이.”
”아아.. 아… 만약에 제가 일을 못해서 쫓겨나면요?”
”그러면.. 아니 그것도 좀 문제긴 한데.. 뭐 어쨌든 열심히 일 해라. 남에 돈을 꽁짜로 먹을 생각은 하지 말고.”
좀 따뜻한 격려를 듣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어머니는 너무 쿨한 분이셨다. 그려, 당연한 건데 어머니한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랬지. 어머니에게 격려받지 못한 대신 나는 같이 일하는 형들과 주방에서 신나게 사장을 까고는 했다.
---
그리고 11월 22일, 일을 시작한지 두 주 만에 나는 첫번째 주급을 받았다. 처음에는 들어와서도 한참 동안 어떤 식으로 주급을 받는지 몰라 허둥댔는데, 알고보니 한 주 전의 주급을 받는 형식이었다. 두툼한 흰 봉투를 사장에게 받고 방에 올라와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 지폐가 잔뜩 들어있다. 세어보니 714달러가 들어있었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돈이 조금 더 들어있어 다시 사장에게 말하고 돈을 돌려주었다(그 짧은 시간동안 진심으로 고민했다. 이 알량한 양심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투에는 678달러의 돈이 남아 있었다. 보수 650달러에 팁 21달러를 합한 금액. 한 주만에 70만원 가까운 돈을 번 것이다. 아마도 첫 주라 일을 많이해서 그런 가보다. 이 돈이 내가 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보수다. 처음으로 땀흘려 일하고 받은 댓가다. 돈을 세고 또 셌다. 너무나 기뻤다. 다시 심장이 덜컥덜컥 뛰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늦는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노래를 틀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쳐서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렇게 침대 옆을 뛰어다녔다.
다음번 휴일에 나가서 550달러를 저금했다. 남는 돈으로는 읽을 책을 사고 친구에게 저녁을 샀다. 저번에 공원에서 함께 기타를 쳤던 그 친구는 지금은 영어 강좌를 수강하면서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고 있었다. 그런 여유가 부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는 돈을 벌고 여행할 작정으로 호주에 온 것 아닌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었지만 이제 나에게 세계여행은 더이상 꿈이 아니었다. 격무에 잊혀져 가던 음악여행의 꿈이 갑작스레 피부에 닿을 듯 현실처럼 느껴졌다. 여행이 머지 않은 것 같았다.
-
오늘의 음악, "Go", Pearl Jam
* 어떤 링크를 가져다 놓아도 라이브 박력의 1/10에도 못 미친다. 근데 내가 본 라이브에선 <Go>를 안해줬다는 것이 함ㅋ정ㅋ
** 펄 잼 공연 본 이야기는 스핀오프로 따로 올릴 겁니다 ㅋㅋㅋ 펄 잼 본 이야기도 한 세 번은 올린 것 같다...
-
Reference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