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으로 일한지 세 주가 지나자 일이 몸에 붙기 시작했고, 그와함께 나의 자신감도 점점 늘어났다. 한 팔에 그릇을 네 개씩 올리고 서빙을 했고 제법 손님들 비위도 맞출줄 알게 되었고, 호주 손님들에게는 영어로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아, 설마 나는 서빙을 위해 태어난거였나’라는 착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포지션을 설거지 담당으로 바꾸었다.
그와 함께 이 작은 레스토랑의 몇 안되는 접시들도 정신없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에게는 "실수는 많이 해도 그릇은 절대로 깨뜨리지 않는다"라는 신념이 있었는데, 그 것도 깨지고 말았다. 단지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아서 그릇을 깰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었다. 내 둔한 손 위에서 그릇들은 찻잔부터 와인글라스까지 종류별로 부서져나갔다. 쌓여있던 넓은 사기 그릇 다섯 장을 동시에 깬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은, 레스토랑 영업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조리팀이 음식을 준비하면 서빙팀이 음식을 내가고 빈 그릇을 내온다. 주방팀은 빈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놓는다. 이 세 팀의 팀워크가 맞아야 제 때 음식을 내놓을 수 있고, 특히나 뷔페 레스토랑인 이 곳에서 설거지는 속도가 생명인 일이었다. 설거지가 느려지면 깨끗한 그릇이 나오지 않으니 음식을 담아 내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빈 접시가 씻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쌓이다가 싱크대에 가득차 버렸고, 결국 다른 형들이 내 설거지를 도와 통제불능 상태의 싱크대를 비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어느날, 나를 측은하게 여긴 동료 형 한 명이 나에게 설거지 비법을 전수 해주기 시작했다(사실 설거지가 안되면 레스토랑 전체가 마비되어버리므로). 우선 오른쪽 싱크대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세제 풀고, 어 그 정도로, 그릇을 넣어. 그리고 빼.
”엑? 안 더러워요?”
호주 세제는 워낙 강해서 세제 푼 물에 그릇을 담궜다 빼기만 해도 거의 씻겨나가. 봐봐(뽀도도독). 다 씻겨나갔지? 남아있는 건 이제 세제를 헹구면서 씻어내면 되는거야. 알겠지?
”아… 고마워요 형…”
”일 열심히 잘 해야되. 사장 눈치 잘보고. 일 못하면 짤리는 거야. 아, 그리고 아무리 불편해도 장갑은 무조건 껴. 이 세제가 얼마나 쎈데.”
"아, 그런가요?"
과연 그러했다. 나중에 방에 돌아와서 확인하니 손의 피부가 다 벗겨져 있었고, 며칠간 나는 주부 습진으로 고생했다. 기타를 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설거지를 시작한지 두 주가 지나고 도합 열 장 안팎의 식기를 깨면서 설거지에 적응이 되자, 사장이 또다시 다른 일을 맡겼다. 이번에는 뎀뿌라를 튀기란다. 적응 될만 하면 포지션을 바꾸니 신물이 다 났다. 그래도 뎀뿌라 튀기는 일은 도중에 눈치보면서 뎀뿌라를 하나씩 주워먹을 수 있으니 설거지보다 나은 것 같았다. 게다가 더 이상 주부습진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남반구에는 여름이 찾아오고 있음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갈수록 날씨는 더워져서 11월 말에는 이미 완전한 여름날씨가 되었고, 급기야 내가 튀김 담당이 된 12월 초에는 35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런 날씨에서는 땀이 코 끝으로 뚝뚝 떨어졌고, 새우를 튀기고 뎀뿌라 소스를 담고 그릇을 나르고 하다 보면 상의가 땀과 기름으로 완전히 젖어있기 일쑤였다. 거기에 전선불량인건지 튀김기 위의 팬은 툭하면 꺼지고는 했다. 팬이 꺼지면 나는 나가서 팬의 전원을 다시 넣고 돌아와야 했고, 그 사이 새우 뎀뿌라는 갈색으로 타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는 시간들. 기록적으로 더웠던 어느 하루는 주방장 아키가 갑자기 들어와서 잘 돌아가는 팬을 꺼버렸다.
”악! 아키! 왜 꺼요!”
”팬을 틀어놓으면 주방의 열기가 다 손님한테로 간다. 그거 안 좋아. 참아.”
손님이 왕새끼이니(손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돼지처럼 처먹고 진상피우는 모습을 보면 욕이 안 나올수가 없다) 돈받는 내가 그냥 참을 수 밖에 없었고, 그날 저녁 내내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채로 뎀뿌라를 튀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사장이 비싸다고 손대지 말라고 한 맥주(Asahi, 일본)를 가져와 마시면서 기상예보를 찾아 보았다. 그날 멜번의 최고 온도는 40도였다. 40도! 정말 단어 그대로 기록적으로 더운 날이었다. 40도의 날씨에서 다섯 시간동안 튀김을 튀기다니! 그 순간 가장 미웠던 사람은, 팬을 끈 주방장 아키도 아니고 튀김을 주문한 손님도 아니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었다. 지구온난화를 불러온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미국 놈들아 우리가 온난화를 막아야겠니 안막아야겠니? 도쿄의정서 가입 해야겠니 안해야겠니?
이 열기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뎀뿌라를 튀긴 내 체력이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아사히 맥주를 마실 자격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맥주를 꿀떡꿀떡 마셨다. 한 병이 통째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온 몸에 싸한 소름이 돋았다.
물론 포지션은 유동적이라서 그 후로 항상 튀김만 튀긴 것은 아니었다. 손님이 몰려 서빙을 하던 하루는 굴 두접시를 옮기다가 굴소스를 쏟아버렸다. 근 일주일간 쌓인 피로 때문에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려던 찰나 굴 접시 위에 있던 굴소스가 내 오른 허벅지 위로 쏟아졌고, 굴들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욕이 입술까지 나왔으나 너무 힘이 들어서 말할 수도 없었다.
굴소스로 더러워지고 냄새나는 옷으로 서빙을 하기는 무리일 것 같고, 거기다 더이상 음식을 옮기기가 싫었다. 갑자기 들어가서 쉬고 싶어졌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형들에게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하고 무작정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설거지 담당형이 와서 굳은 얼굴로 왜 이걸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 밖에 못 나가겠어요. 옷도 더러워졌고. 굴쏟아서 그런거야? 솔직히 대답했다. 네...
”하이고, 굴 쏟아서 이정도면, 그릇 깨면 울겠네.”
눈이 마주쳤다. 표정은 굳은데,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야... 버틸 수가 없다.
”예! 진짜로 울거에요.”
”참나. 헤헤헤.”
”헤헤헤…”
결국은 실실 웃으면서 나가서 다시 서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욕도 먹고 털리기도 하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과 조언도 받아가면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일주일에 여섯날은 굴소스를 옮기고 뎀뿌라를 튀기고 쓰레기통을 비웠고, 나머지 하루는 시내로 나가서 노래를 듣고 멜번에 단 한명 있는 친구와 저녁을 먹고 근교로 여행을 다니는 생활이 반복 되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가게 뒷정리를 하고 늦게 돌아오면서 보는 밤하늘도, 남반구의 별들도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딱 두 달 전에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는 밤하늘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닳도록 인터폴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 일이 조금씩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능숙하게 서빙을 하고 음식을 만들다니, 불가능이란 없었다. 나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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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NYC", Inter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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