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산 락페 토요일, 장기하 본 이야기ㅋㅋ
4. 일요일
4. 일요일
결국 댓시간도 못자고 더위에 배고픔에 숙취에 또 일찍 일어났음. 그래도 밥은 든든히 챙겨먹고 그 뜨거운 날씨에 서브스테이지로 나가서
-한음파를 봤다. 다 보진 못하고 점심 먹고 후반의 세 곡 정도를 봤다. 마두금을 쓰는 걸로 유명한 밴드 아닌감. 마두금으로 만들어내는 그 비장한 분위기가 장난이 아님. 나랑 완전히 맞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밌게 들었다. 키보드 치는 여성분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었는데, 역시나 눈코의 연리목씨였다는군. 다들 땡볕에 고생하셨습니다.
-버스커 버스커. 우리가 이 땡볕의 두시 반에 밖으로 나온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끄는 이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고 수민이는 엄청 기대하고 다들 더워하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공연은 별로였다. 1년만에 폭풍같이 인기를 끌고 데뷔한, 급조된 티가 엿보였다. 기타 사운드는 작고 개성이 없는데다 브래드의 드럼은 너무나 많이 엇나갔다. 불안불안한 연주. 장범준의 염소창법만 믿고 가는 공연이었다. 실제로도 보컬만 크게 들리도록 세팅되어 있더구만. 불안한 연주에 뜨거운 햇살에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어 듣다가 빠져나왔다.
-옐로우 몬스터즈. 그리고 보러간 공연이 옐로우 몬스터즈 ㅋㅋㅋㅋㅋ 그 죽을 것 같은 세 시의 더위에서 사람들은 흙먼지 폴폴 날려가며 슬램을 잘만 하더라. <위 잇 유어 도그스>라는 재미 터지는 앨범으로 돌아온 그들의 공연은 사실 나는 첨 보는 거였는데, 결국 나도 못참고 슬램판으로 뛰어들었다. 슬램이 엄청 빡셔서 한 곡 하다가 나오긴 했지만. 정말 실력도 괜찮고 노래도 좋은 펑크 팀. 그래 이런 팀이 하나 정도 있어야 락 페스티벌이지.
그 다음 End of the World 공연이 진행될 때 텐트를 해체한다고 공연을 보지 못했다. 텐트 해체와 짐싸기가 늦어져서 바로 이어진 Boom Boom Satellites의 공연도 못봤고. 노래 진짜 내 스타일이던데 못봐서 저 멀리서 땀이랑 눈물만 흘렸네. 그렇게 텐트 해체하고 나니깐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져서 친구들이랑 산 위에 돗자리 깔아놓고 누워서 기타만 쳤다. 땀으로 끈적이니 모기가 모여들어서 모기향도 피웠다. 대낮인데도 모기가 그렇게 극성이더라.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랑은 넬의 공연 때 만나기로 했건만 게으름 부리다가 겨우 내려갔다.
-넬. 07펜타 참가자인 나야말로 <넬>이 얼마나 강한 락 스피릿의 보유자인지 알고 이찌. 졷같니 뭐니, '씨발 술마셔!'하는 김종완의 대사까지 그 때 넬의 음주후 숙취 공연은 정말 대단했다. 아니, 진짜로 맘에 들었다. 멋있잖아. 그게 락 스피릿이고 그게 락페의 분위기지. 그 때를 기대했던 나는 이번 넬 공연이 너무 진지하고 좋아서 별로였다. 막 깽판도 부리고 이러면 좋았을텐데. 돌아와요 넬, 07년의 분위기로..
넬은 총 6명이었는데, 퍼커션 세션이 한명이 더 있었다는 게 특기할 만한 사항. 모던락이니 리듬감을 살리면 덜 졸릴 거라고 생각한 건가? 혼자서 그런 생각 하면서 공연을 들었다. 퍼커션 세션은 괜찮았다. 곡을 더 흥겹고 다채롭게 만드는데 한 몫 한듯. 넬의 사운드가 가진 질감도 좋았다. 시규어 로스가 떠오르는 소리들, 돈 좀 들었겠구나 싶은 소리들이 났음.
하지만 공연은 07때에 비해서 지루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백색왜성'을 느린 버전으로 들어서 그런건가. 소리도 좋고 연주도 괜찮았지만 왠지 아쉬웠다. 김종완이 욕만 한번 더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ㅋㅋㅋ
-Beady Eye. 원래 오아시스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갤러거 형제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없는 터라 공연 안보고 저녁 먹은 다음 돗자리에 누워서 책 읽음. 하지만 그러는 중간중간에도 기억할 만한 부분이 있었지. 우선 뒤에 Champion이라 쓰인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나온 리암 ㅋㅋㅋㅋㅋㅋㅋ 이놈ㅋㅋㅋㅋ
요즘 노엘 갤러거의 높이 나는 새에 자극을 받은 덕분인지, 비디 아이도 오아시스를 두 곡 커버하기 시작했다. '롹앤롤 스타'는 화장실 가는 도중에 들었고, 씻고 내려와서는 '모닝 글로리'를 들었다. 모닝 글로리 때는 일어나서 막 뛰어다니면서 봤음. 뭐 비디 아이는 내게 그저 그랬다. 신나긴 하지만 날 뒤흔들 정도는 아닌. 신곡도 나쁘진 않지만 들을 필요도 없는.
-장필순. 텐트와 짐 정리한다고 바쁜 사이에 장필순의 공연을 보고 왔다. 작년 여름 뮤즈라이브홀에서 본 것과 같은 세션들. 함춘호님의 기타. 락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장필순님은 힐도 신고 화장도 이쁘게 하고 오셨는데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해주셔서 감동받아서 멍하니 듣고.
잔잔한 곡들이 계속 흘러 나오는데, 뭐 어떤 축제가 끝이 쓸쓸하지 않겠냐만은, 올해 지산의 마지막 날은 유난히 슬프다. 후배들 친구들 다들 대학원에 가고, 나는 군대에 갈거고, 앞으로도, 당장 내년에도 이렇게 즐겁게 놀 수 있을까. 이게 마지막 아닐까.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시벌 밥은 빌어먹고 살려나, 나는 또 멋진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등등... 그 와중에 장필순 누님은 한 곡을 마치고 밴드 세션들과 관중들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시고. 내가 웬만해서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더라.
설악산에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어머니와 문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했다. 그러니 <또 볼 수 있지용!> 하고 답장이 오더라. 역시 어무이밖에 없어요... 조심해서 집에 잘 돌아가시라 문자를 하고 몇 곡 더 보다가 친구들 한테로 돌아갔다.
-the Stone Roses. 사흘의 락페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헤드라이너. 솔직히 좋을지 아닐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노래는 은근히 댄서블한데 잘 해주려나. 10년에 이안 브라운 단독 공연은 완전 꽝이었는데.
어쨌든 '아 워너비 아도어드'가 시작하자 우리는 우루루 몰려가서 구경하기 시작했음. 음반에서 들은 것처럼 싸이키델릭한 기타톤이 아니라서 실망. 그리고 앞의 몇 곡들은 그렇게 임팩트가 없어서 별로였다. 이안 브라운의 보컬은 정말 매가리도 없고 음정도 안맞았고, 에이, 이런 밴드가 무슨 위대한 밴드라고
하는 순간 'Fool's Gold'가 시작. 댄서블한 리듬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각자가 흥겹게 개다리춤을 춰가며 노래를 들었다. 이안 브라운의 노래가 끝나고 10분이 넘는 기타 솔로와 그에 맞춘 드럼과 베이스의 연주가 시작되자 노래가 10배는 좋아졌다. 진짜 황홀경. 존 스콰이어는 기타를 정말로 잘 치는구나. 그 전에 했던 모든 공연에 대한 의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번 페스티벌 최고의 순간 중 하나.
그 이후로도 'Waterfall', 'Love Spread'등 도발적인 리듬 트랙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안 브라운의 존재 가치를 깨닫다. 노래도 졸라 못부르고 다른 세 친구들이 열심히 연주하는 동안 배 문지르면서 시시껄렁한 춤이나 추는데 그의 존재 가치는 뭣인가?
바로 그 춤이었다. 이안 브라운은 이제까지 봐왔던 어떤 밴드의 프론트맨과도 다른 천진난만한 매력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는게 너무 재밌었다. 이상한 춤에, 열심히 솔로치는 친구에게 모자를 씌우질 않나, 셋리스트를 비행기로 접어 날리고, 나중엔 이소룡 피규어로 카메라에 장난까지 치고, 50먹은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진짜 그게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스톤 로지즈의 공연은 'I am the Resurrection'으로 마무리되고 우리는 다같이 '내가 부활이다'를 외쳤다. 땀에 젖은 아저씨 네 명은 서로 포옹을 하며 무대 뒤로 넘어가고 그렇게 우리의 2012년 지산이 마무리되었다.
락은 젊음이니 열정이니, 그런 말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로 저 원숭이 아저씨처럼 인생을 살고 싶더라. 반백을 살면서도 어린이처럼 즐겁게 살고 싶다. 내려오면서 그 생각이 들었다. 장필순 때 쌓였던 감정들과 질문이 이안 브라운의 춤에서 다 녹아나가는 느낌이었음.
살아나갈 힘을 준다는 거. 이런게 진짜 멋진 공연이 아닐까. 또다른 멋진 페스티벌이 끝나고 여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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