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1) 8월 10일 금요일, 시작부터 꼬임 trip



정말 떠나기 싫을 때가 있다. 금요일 아침이 그랬지. 룸메이트의 뒤척임에 잠깐 눈을 떴을 때, 창 바깥으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허, 한 달 동안 소식도 없던 비가 여행 출발에 맞춰 이렇게 내리다니.
"그으래, 이게 제천이제."
작년 제천국제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던 룸메 인혁이가 옷을 챙겨입으며 중얼거렸다. 제천 가면 딱 이거의 세배로 비가 내린다니깐. 존나게 고생했지. 지금도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홉시가 살짝 넘은 시각. 어차피 늦었으니 좀 여유롭게 출발해야지. 오랜만의 습기와 시원함이 너무 좋아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누웠다.

ㅋㅋㅋ 그렇게 여행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눈을 뜨니 열두시. 예매한 영화는 오후 한 시 시작인데 ㅋㅋㅋㅋ 뒤늦게 나의 수면욕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두 번째 예매작이라도 챙겨 보자고 생각하고 바로 옷을 챙겨 입고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엌ㅋㅋㅋ 그런데 대전에서 제천 가는 기차가 오후 3시까지 없음ㅋㅋㅋ 너무도 타고 싶었던 기차를 포기하고 1시 20분 복합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ㅋㅋㅋ 타고 보니 제천까지 가는 버스는 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충주를 경유해서 가면 4시 15분에 제천에 도착하나 어쩐다나. 나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버스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선 옆방에 켜두고 나온 라디오의 웅얼거림 비슷한 소리가 났다. 그렇게 잤음에도 또 잠이 와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몸을 기대니, 갑자기 버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닌 강력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청국장의 콤콤한 냄새. 뒷자석에 앉은 남자의 발냄새가 분명했다. 와, 발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도 있나. 의자를 다시 세웠지만 냄새는 여전했고, 결국 냄새에 적응한 후에야 잘 수 있었다. 
요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여행도 병신같을 것임을, 난 이 때 이미 예견했어야 했다. (물론 그러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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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버스터미널에서 한참을 졸다(버스에서 졸면서 토킹 헤즈를 듣는 꿈을 꾸었다) 마침내 눈을 떴을 때 버스는 박달재에 와 있었다. 울고 넘는다는 박달재를, 하지만 버스는 무심히 박달재 터널로 넘어가고 말았고 곧 몇 군데의 조그만 마을을 더 들른 후 버스는 제천에 도착했다.

보통이라면 이 타이밍에서 사진이 나와줘야 겠지만 사진이 없ㅋ슴ㅋ 제천시외버스터미널은 나무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이었고, 내려서 밖으로 나가니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의 부스가 보였다. 그들에게 메가박스 영화관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택시나 버스를 타도 괜찮았겠지만 오래 앉아 굳어진 다리도 풀 겸 걸어가기로 했다.



영화관으로 걸어가면서 만난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포스터. 조남룡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랬는데, 자연과 어울리는 멋진 분위기는 좋지만 볼 때마다 시규어 로스의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 앨범 커버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영화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제천 메가박스 건물은 내 예상과는 달리 4층의 아담한 건물이었다. 노란색 외관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어차피 놓친 첫번째 영화는 포기하고 예매해놓은 두번째 영화 티켓을 찾으러 건물 뒤쪽의 영화제 티켓 오피스로 갔다. 그런데 발권이 안된단다. 알고보니 두번째 영화의 상영 시작 시간이 다섯시가 아닌 네시였다는 것이다. 오오... 이렇게 영화제 첫 날 보려고 한 영화 두 편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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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나는 제천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을 '빽가'라고 해두자(별명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룸메이트였고 교내 메탈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던 그 친구는 지금은 서울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가 영 쉽지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같이 본 공연이 작년 3월의 아이언 메이든 내한이었으니.
그 후로 우리는 락페에서 공연에서 계속 만나기로 했지만 상황이 따라주질 않았다. 작년 지산에서 보기로 한 약속은 친구의 학교 동아리 행사 때문에 취소되었고(하는 것도 없는 동아리의 단 하나 있는 큰 행사가 락페 일정과 겹쳤다고 했다), 올해 쥬다스 프리스트 공연을 같이 보기로 한 것도 동아리 행사 때문에 취소되었다. "야 무슨 놈의 동아리가 그렇냐 행사 째고 나와!"라고 외치자 친구가 울먹거리면서 "나... 나 그 동아리 회장 됬단 말이야!"라고 절규하던게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이런 병신놈을 봤나...

어쨌든 자칫하면 올해도 또 다른 동아리 행사 때문에 만날 수 없을 뻔 했던 것을, 이번 제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원래는 내가 먼저 제천에 도착해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친구가 합류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꼬인 것이다. 배터리가 나갔던 폰을 서둘러 충전하고 켰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영화보고 있을테니 폰 충전되면 연락해라>

결국 나는 친구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하릴 없이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관 가까이의 시장을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 타이밍에 배가 아파왔다. 비 내리는데 이불을 제대로 안덮고 자서 그러는 갑다. 오늘 무슨 일진이 이렇냐 생각하며 영화관 화장실로 달려갔다.
제천 메가박스 1층의 남자 화장실에는 두 칸이 있었는데 이게 또 재미있었는 것이, 왼쪽 칸에는 휴지가 있지만 문의 잠금장치가 고장이 났고, 오른쪽 칸은 문이 잠기지만 휴지가 없었다. Q.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왼쪽 칸에서 충분한 양의 휴지를 뜯어서 오른쪽 칸으로 들어간다. 하마터면 왼쪽 칸에서 바지를 내릴 뻔 하였으나, 다행히 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위의 모범답안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어머니 당신 아들이 이렇게 똑똑해요!!

이런 난리를 쳤음에도 친구의 영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영화관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먹었다. 제천 영화관에 와서 처음 하는 일이 똥싸고 오락하는 거라니. 한 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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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놈은 내 손이 제천 메가박스 오락실의 조이스틱에 완벽히 적응할 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오락(메탈 슬러그 3)을 두 판 하고 주위를 돌아다니다 무례하게도 영화를 보는 친구의 폰에 몇 번씩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영화들이 하나씩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 친구는 네 시에 시작하는 영화들 중 가장 긴 영화를 고른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일곱시가 되어서야 나는 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기쁨의 포옹을 하자마자 친구가 하는 말. "난 더 병신이 됐어!!"


<내 친구 빽가. 제천 메가박스 앞에서.>


과연 그래 보였다. 어쩜 몇 년을 봐왔는데도 넌 한결같이 병신같니. 과연 니가 최고라는 몸짓을 하고 우리는 혼잡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배가 고파왔다. 제천 중앙시장을 가로질러가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집어먹기로 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채 백미터를 걸어나가기도 전에 우리는 멈춰서야 했다. 제천 명물이라는 빨간 오뎅을 지나칠 수 없었던 탓이다. 영화관 바로 앞의 원조 빨간 오뎅 집은 성황이었음. 매운 양념을 한 오뎅을 나무젓가락에 끼워서 팔고 있었는데, 4개에 천원이었다. 사실 빨간 오뎅의 크기가 보통 오뎅의 반 정도였기 때문에 양에서는 보통 오뎅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조삼모사라고 원숭이의 두뇌를 가진 우리는 매우 기뻐하며 빨간 오뎅을 집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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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오뎅을 많이 먹었으나, 오뎅으로 저녁을 때우기에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에 빽가와 중앙시장을 둘러보았다. 제천 중앙시장은 지방도시 시장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이에 끼인 고춧가루를 쑤시며 시장으로 들어서자 여러 아줌마 할머니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옷가게가 모여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아주머니들은 판 깔아놓고 고스돕을 치고 있었다. 축제가 있으면 식당은 확실히 장사가 잘 되는데 옷가게는 오히려 반대인 모양이다.
그러한 연유로 제천음악영화제가 정작 시민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제의 수익은 그렇다 치고, 지방 축제로써 지방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방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나. 최명현 현 제천시장의 선거 당시 공약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전면 재검토'였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나라 몇 안되는 특색있고 괜찮은 영화제인데, 잘 살아남으면 좋으련만.





시장 여러 곳에서 빨간 오뎅과 떡볶이, 올챙이 국수를 비롯한 분식들을 팔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식당이 없더라구.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저녁으로 택한 음식은 곱창볶음! 중앙시장 옆의 '우성순대'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알고 간 곳은 아니었고 고기 안주로 쏘주나 마시자는 생각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괜찮은 맛집을 발견한 것이다. 순대국밥(6천원)이 인기 메뉴였지만 우리는 쏘주로 회포를 풀겠다는 생각에 곱창볶음(2인 1만 4천원)을 시켰음. 푸짐한 밑반찬이 나왔다. 사진을 보면 돼지껍데기 무침도 있고 순대도 있다. 돼지껍데기 무침이 안주용으로 제격이었고 순대도 맛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순대를 서비스로 더 주시더라. 우리가 좋아서 비명을 지르니깐 식당 손님들이 다 쳐다봤다. 
어쨌든 빽가와 나는 시끌벅적하게 외부인 티를 내며 떠들며 오랜만의 만남을 자축했다. 둘 다 술은 약한지라 소주 한 병만 마셔도 술기운이 확확 올라왔고, 우리는 기분좋게 취해서 식당을 나섰다.


* 아, 그건 그렇고 내 블로그에 음식 포스팅이 올라오다니 이거 역사적인 순간 아닌가.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10년만의 일이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청회에 관한 레퍼런스 ( http://www.tjnews.co.kr/?bo_table=s1&doc=bbs/gnuboard.php&wr_id=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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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OE 2012/08/20 00:08 # 답글

    그러게요. 저 포스터는 누가 봐도 라이언 맥긴리...
  • kidsmoke 2012/08/21 01:48 #

    맞죠? 사진작가 이름이 라이언 맥긴리인지는 처음 알았네요 감사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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