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2) 8월 10일 금요일, 카바레사운드 공연 trip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크게 제천의 세 장소에서 진행된다. 1. 대부분의 영화는 제천 시내의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며, 간혹 그 앞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2. 개막식이 열리는 청풍호수의 호반무대에서는 '제천 라이브 초이스'나 '원 썸머 나잇'등의 영화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공연이 펼쳐진다. 3. 의림지의 Jimff 라이브 스테이지에서는 그 외 다양한 이벤트 공연들이 펼쳐진다.
원래는 저녁 9시의 <세르쥬 갱스부르의 자화상Gainsbourg by Gainsbourg>를 보려 했는데, 표를 취소하고 의림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공연을 보는 것이 그래도 둘이 떠들면서 즐기기에는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시꺼먼 남자 둘이서 쏘주냄새 곱창볶음 냄새 풍기면서 비틀거리며 의림지행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모습은 분명 꼴불견이었으리라.




의림지는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저수지 중 하나이다. 해가 진 후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의림지의 운치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실은 옆에서 "나도 바이킹 탈거야!"하고 외쳐대는 친구놈을 말린다고 그럴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았다. 의림지 파크랜드에서 의림지 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 곧 특별 상영 영화가 시작되었다.

제천에서 본 첫번째 영화, <캔 유 필 잇Can You Feel It> : 2011년 마이애미에서 있었던 UMF(Ultra Music Festival)를 담아낸 필름. 세계 최정상급 디제이들,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보여준다. 티에스토부터 스크릴렉스, 칼 콕스, 펜듈럼 등 듣기만 해도 흥분되는 DJ의 공연이 가득 담겨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음. 하지만 내용이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깊은 접근을 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잘 만들어진 UMF 공식 홍보 영화'가 내 의견.
뭣보다 나는 '누굴 보러 왔느냐'는 질문에 "당연 여자 슴가랑 궁딩이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당연하지, 무슨 스크릴렉스에 티에스토를 보러와. 고놈 참 똘똘허이.

물론 머릿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했지. 나랑 빽가는 라이브 장면이 나올 때마다 몸을 들썩들썩 움직이며 좌식 그루브를 타기에 여념이 없었다. 복숭아뼈 부근에 모기를 물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온 몸을 열심히 움직여 주어야 했다. 그렇게 흥겹게 영화를 본지 딱 5분이 지나자 우리 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자리 옮길까?"하고 속삭이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리더라. 민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며칠 전 열린 UMF Korea를 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되는 라이브 필름이었다. UMF Korea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해주니 빽가가 나에게 막 화를 내면서 왜 자기한테 이야기 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미친 놈아 내가 니 취향을 어떻게 아냐;; 원래 메탈돼지였잖아 너..




영화가 끝나고 잠시 스테이지 정리 시간이 있은 후, 오늘의 본격적인 공연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 입니다>가 시작되었다. 인디 레이블 '카바레사운드'의 설립 15주년을 기념하여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카바레사운드 소속 뮤지션들의 공연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공연 전 카바레사운드 사람들이 훌라후프를 돌리는 짧은 오프닝 영상이 나왔다. 한 팀씩 앞으로 나와서 훌라후프를 돌렸고 곧이어 그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타자는 '오! 브라더스'였는데, 아마도 레이블 사장님이 계신 밴드라서 처음 나온 것 같다. 공연 시작과 함께 한 줌 정도 되어 보이는, 그닥 많지 않은 관중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와 빽가도 나아가 흥겨운 락큰롤을 구경하다 오브라더스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 팀이 나올 때 무대 뒤쪽으로 빠졌다. 세 시간에 걸쳐 대략 일곱 팀이 나올 예정이었고, 공연이 한참 남았는데 일찍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무대 저 뒤쪽에서 빨간 오뎅 한 접시를 맥주 안주로 해서 먹고 마셨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바쁘게 흘렀던 하루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 친구와 맥주캔을 부딪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딱히 안부를 물을 것도 없이 빽가와 나는 서로 병신같이 잘 살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대학교 시절 여자친구 이름을 부르며 놀려댔다. 그런데 의림지에서 파는 빨간 오뎅은 꽤나 맵더라. 한동안 서로 헥헥 거렸다.




그렇게 먹고 마시다 '쾅프로그램'의 공연 때 다시 무대 앞으로 나갔다. 요즘 잘 나간다는 쾅프로그램은 기타/보컬 + 드럼 + 맥북이의 삼인조 체제였는데, 아무래도 조이 디비전이 떠오르는 포스트 펑크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 기타리스트의 종잡을 수 없는 댄스 때문에 더욱 조이 디비전이 떠올랐던 듯. 라이브를 한번 보고 싶었던 팀인데 괜찮았다. '역사적, 현재적 상황은 자꾸 쪼개지면서도 촛점이 나가고'나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가 반복되는 가사도 인상적이었고.
그건 그렇고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뒤쪽의 화면으로 밴드 네임이 계속 뱅글뱅글 돌았는데 그게 참 어지러웠다. '쾅프로그램'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는데 '쾅'이라는 단어가 발음은 물론이고 비쥬얼 적으로도 충격적인 단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쾅프로그램의 공연을 열심히 보고 뎁deb의 공연 때 뒤쪽 의자로 나왔다. 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먹고 뛰고 하니 피곤하였다.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 앞쪽은 몇몇 팬들과 젊은 사람들, 영화제 자원봉사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그에 비해 플라스틱 의자가 깔려있는 뒤쪽은 냉담할 정도로 조용했다. 웃으면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공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뜨거운 물과 찬물이 만나 섞이지 않는 듯한 어색한 분위기. 그 분위기를 무마라도 하려는 양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자원봉사자 분들이 조그만 불꽃놀이를 나눠주면서 뎁의 공연은 고조되었다. 사람들은 나눠받은 불꽃놀이를 흔들었는데, 각자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서 불꽃은 무대 앞에서 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불꽃을 다른 방향으로 마구잡이로 흔드는 바람에 전혀 예쁘지가 않았다. 거기에 불완전 연소된 불꽃의 매캐한 연기까지 공연장을 뒤덮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산만해졌다. 앞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 뒤에는 떠드는 사람들, 제각각으로 흔들리는 불꽃과 연기들.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엇나감. 이것이 지방 축제 특유의 산만함이었다.
이게 좋아서 그냥 우리는 마음껏 웃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고 있었고, 그래서 공연이 흘러가든 말든 이 산만함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모두들처럼 나와 빽가도 우리만의 방법으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기로 결정했고, 물을 마시고 불꽃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며 공연을 즐겼다.





그 산만한 분위기를 공연의 마지막 밴드인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끝장내고 말았다. 지금 카바레사운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인 구남은 무대에 서자 말자 특유의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어지는 <건강하고 긴 삶>으로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오, 건강하고 긴 삶 그것은 바로 라껜롤!
<남쪽으로 간다>를 비롯해 구남의 몇몇 노래는 뽕짝끼도 다분한데, 무대 저 멀리 계시던 어르신들도 구남의 음악에는 같이 춤을 추지 않았을까 생각 해본다. 참으로 궁금했지만 이 때는 내 한 몸 공연 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갈수록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조웅씨는 관중에게 무대 위로 올라 오라고 소리쳤고, 그 뒤로 아마도 이번 제천음악영화제 사상 가장 대단한 장면이 펼쳐졌다.




정신없이 모두가 뛰노는 와중에서도 사진을 찍으려고 했고 그나마 또렷하게 찍힌 사진이 위의 것들이다. 열광한 사람들은 밴드와 뒤섞여서 한참을 춤을 추었다. 이렇게 신나는 공연은 드문데. 정말 신명나게 놀았다. 사실 관중들이 하도 흥분을 해서 나는 기타 케이블이 뽑히거나 무대 바닥이 꺼지는 사고라도 일어날까봐 무서웠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밴드 멤버 분들이 제일 진땀 흘리셨으리라.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쨌든 구남을 마지막으로 의림지에서의 공연은 끝이 났다.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인심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제천 여기저기의 찜질방과 숙소로 데려다주셨다. 금요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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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랑 2012/08/19 14:38 # 삭제 답글

    좌식 그루브......
  • kidsmoke 2012/08/21 01:46 #

    ㅋ ㅋ ㅋ ㅋ
  • 루얼 2012/08/19 18:44 # 답글

    제가 캔유필잇에 낚여서 바로 UMF를 예매했다 아입니까...ㅋㅋㅋ 진짜 홍보용으로 최고에요bb
  • kidsmoke 2012/08/21 01:46 #

    전 참았고 결국 안갈 수 있었는데(?) 봤으면 저도 빚내서 갈 뻔 했어요 ㅋㅋㅋ
  • DOE 2012/08/20 00:07 # 답글

    구남 대박이네요...
  • kidsmoke 2012/08/21 01:47 #

    진짜 대박이었어요... 키보드 분 사람들에게 치여서 엄청 고생하셨을 거예요. 키보드에 맥주도 튀고 그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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