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3) 8월 11일 토요일, 죽어라 영화 봤음 trip

제천국제음악영화제 8월 10일 금요일, (2)카바레사운드 공연

그날 잠은 제천 시내의 찜질방에서 잤다. 빽가와 찬물이 나오는 목욕탕에서 한참을 장난치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찜질방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잠자리를 찾아 누웠다. 친구의 폰을 빼앗아 카톡 목록에 뜨는 여자들의 사진을 구경하면서 놀다(여성들만 있는 그룹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새벽 3시가 넘어 겨우 잠들었다.
채 한 시간도 자기 전에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눈을 떴는데 사람들이 올림픽 축구 한일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쩐지 비명 소리 중에 '박주영'이란 이름이 들려온다 싶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잠에서 깨어 축구를 보고 있더라. 심술이 나서 티비를 끄고 자고 싶었지만 그랬다면 더욱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아, 귀를 막고 겨우겨우 어찌저찌 잤다.

다음 날 점심 경에 일어났다. 역시 아침 10시 영화 기타리스트 <넬스 클라인>을 예매했으면 큰일 났겠구나... 짐을 챙겨 나가는데 티셔츠를 안 가지고 와서 '클럽 정호진' 티셔츠를 입고 나가야 했다. -_-;;
중앙 시장에서 올챙이 국수와 모듬전, 떡볶이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어제 빨간 오뎅을 많이 먹은 탓인지 이불을 제대로 덮지 않은 탓인지 배가 살살 아파 오는 것이다. 결국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시 제천 메가박스 일층으로 가야했다. 내몫의 점심까지 다 먹어버린 친구가 옆에서 하는 말. "넌 제천 영화관에 똥싸러 오냐?"

당연히 똥싸러 가지. 지금까지는. 보통은 쌍욕으로 맞받아치며 복부에 카운터펀치를 날려줬겠지만 배가 아파서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서) 응응 그런거 같아 하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제도 애용한 화장실은 오늘은, 아뿔싸, 문이 잠기는 오른쪽 칸을 이미 누가 쓰고 있네. 일촉즉발의 상황인지라 나는 문이 고장난 왼쪽 칸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문이 닫혀 있으면 아무도 들어오진 않겠지? 물론 섣부른 추측이었다. 그 칸에서 내 몸 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10분 동안 문이 네 번이 열렸고, 그 때마다 나는 손으로 열리는 문을 막으며 "아 저기요!" 혹은 "사람 있거든요!"를 외쳐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일을 다 보고 나오니 웬 양키 형님이 한 명 기다리고 있더라. 문을 잠그지 않고 일을 보는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들어갔는데,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통해 보니 문이 절거덕절거덕 하지만 잠기지 않는다. 요 놈 새끼야 그럼 내가 변태라서 일부러 문을 열고 일을 봤겠니!! 엿 좀 먹으라고 문을 활짝 열고 냅다 튀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서 기다리던 빽가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니 졸라 웃으면서 "와 너란 놈 정말 무서운 놈이다..."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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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큰 문제는 해결했고, 오늘은 영화만 죽도록 보기로 한 날. 심야상영을 제외하고 하루에 영화가 다섯 번 상영되는데, 우리는 한 시 회차의 영화부터 보기 시작했다. 내가 예매한 영화가 매진이라 빽가는 따로 <U2-프럼 더 스카이 다운> 티켓을 구했고, 우리는 헤어져 각자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제천에서 본 두번째 영화, <서칭 포 슈거맨Searching for Sugar Man> : 사라져버린 전설의 가수 로드리게즈Rodriguez를 찾으러 떠나는 다큐멘터리 영화. 사실 이번 영화제에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따로 포스트를 만들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도 할 일이 없었기에 둘이 네 시 영화도 함께 예매했다. 이미 빨간 오뎅을 몇개 사먹었지만 영화 보는 도중에 입이 심심할까봐 카라멜 팝콘도 샀다. 5천원이었는데 정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팝콘 바구니를 받았다. 원래 이렇게 많이 주는 건가? 아니면 시골이라서 물가가 싼 건지? 물통과 팝콘, 배낭과 우산을 짊어지고 어정쩡하게 걸으며 상영관으로 향했다. 두번째 영화는 어중간한 길이의 두 다큐멘터리 필름이 함께 상영되는 형태였다.

제천에서 본 세번째 영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Composer> :
 영화제가 좋은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을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는 영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작곡가 테오도라키스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가 훌륭한 클래식 작곡가였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파리에서 수학하며 메시앙과 불레즈가 서로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듣고 '역겨웠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ㅋㅋㅋㅋ).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님. 대학 시절을 회고하는 인터뷰에서 테오도라키스는 '1년이 걸릴 화성학 수업을 2달에 끝내고, 학비를 충당하기 위한 알바를 뛰었으며, 저녁에는 나찌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였다. 그 와중에 첫 사랑을 만나 불타는 연애를 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똑똑할수가! 시발! 될놈될!
제천에서 본 네번째 영화, <디노 살루찌the Encounter> : <테오도라키스>는 재미있게 보았으나 바로 그 뒤를 이어 상영된 <디노 살루찌>는 살짝 보기 힘들었다. 디노 살루찌는 75세의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인데 테오도라키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왜 도대체 이 두 편의 영화가 같이 상영 되었을까?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보려고 하니 지루하기도 하고 머리도 아파 오더라. 하지만 나는 열심히 봤다. 영화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내 좌석 반경 세 칸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니, 이럴거면 도대체 뭐하러 영화제에 오는 겁니까!!



영화가 끝나고 <용천막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제천 메가박스 입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서 50미터만 가면 나온다. 막국수가 한 그릇에 5천원인가 6천원인가 저렴하다. 사이드 메뉴로 팔고 있는 방울만두(2천원)도 맛있다.
그러나 두 편의 영화가 끝나고 저녁을 먹을 때 까지 팝콘은 3cm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우리는 팝콘을 만나는 부스의 사람들마다 나누어 주었고,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간 막국수집 주인 아주머니께도 드렸다(아주머니께서 매우 즐거워 하셨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 후 영화를 한 편 더 볼 때까지 팝콘은 반도 줄어들지 않았고 우리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건물 구석에 팝콘을 버리고 말았다.

제천에서 본 다섯번째 영화, <퀸: 우리의 나날들Queen:Days of Our Lives> : 저녁을 먹고는 뭘 했냐고? 당연히 영화를 봤지. <퀸: 우리의 나날들>은 더벅머리 밴드의 결성부터 보컬의 죽음까지를 다룬 일대기였는데, 모두가 아는 노래가 흘러나와서 재미있게 봤다. 특히나 등장하는 인터뷰어들이 다들 유머 감각이 있어서 영화 중간에도 계속 웃음이 터짐. 퀸의 미국 진출은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인상 깊었는데, 퀸이 흑인 그룹인 줄 알고 뉴욕의 흑인 라디오에서 밀어줘서 미국에서 히트를 쳤다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웃겼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뒷목에 소름이 찡...
빽가는 다음날 일정 때문에 이 영화까지만 보고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며 친구를 버스 정류장으로 바래다주었다. 아홉시 버스란다. 영화만 보는 영화제라 서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말 재미있었고, 빽가와 나는 다음에 또 제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천에서 본 여섯번째 영화, <레이 찰스, 아메리카Ray Charles, America> : 홀로 남은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었을까. 당연히 영화보기지. 레이 찰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다음으로 본 영화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흑인 고아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레이 찰스, 아메리카>는 레이 찰스의 행적을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정신, 돈(Money), 죄(Sin), 성공(Success), 전설(Legend) 등에 빗대어 따라간다. 그런데 필름에서 레이 찰스를 너무 치켜세워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돈'과 '죄'에 비해 '성공'과 '전설'이 너무 커지는 느낌? 나만 그런가 했더니 영화를 보고 나온 주변 사람들도 '아마 타계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나쁜 말은 없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함께하던 친구가 간 후의 쓸쓸함이란 이런 거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자 혼자된 느낌이 스산한 여름 밤바람과 함께 나를 감싼다. 쓸쓸함이 허기를 자극하여 나는 선 자리에서 여섯 개의 빨간 오뎅을 해치웠고, 그러고도 모자라 남아있는 백원 동전으로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나는 이틀 동안 혼자 총 열아홉개의 빨간 오뎅을 먹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제천에서 본 일곱번째 영화, <퍼스트 온 더 리스트the First on the List> : 그러고도 할 일이 없는지라 심야상영 표를 끊었다. 나는 이미 전주에서 <불면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심야상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지. 그 때는 <말리>와 <조지 해리슨> 단 두 편의 영화로 350분간 영화를 봤었는데, 오늘은 비슷한 시간 동안 세 편의 영화가 상영될 계획이었다. 특히나 다섯 DJ가 나온다는 두번째 영화 <제너레이션 뮤직 프로젝트>가 관심이 갔는데, 정작 세 편의 영화 중 내가 제대로 본 영화는 첫번째, <퍼스트 온 더 리스트> 뿐이었다.
<퍼스트 온 더 리스트>는 솔직히 음악영화로 묶긴 애매한데, 내용이 참 재밌었다. 1970년대 정국이 불안정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운동음악을 하려는 세 빨갱이 청년이 곧 일어날 쿠데타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신청을 한다. 부모님께는 거짓말을 하고 밤새도록 차를 몰아 국경으로 가는 와중에 군대와 마주치면서 달아나는데, 알고보니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더라. 여기서 일이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사건은 이탈리아와 (친구들이 국경을 넘어간)오스트리아와의 외교 분쟁으로 커진다. 돌아온 친구들은 엄청나게 놀림을 받는다. 이번 제천에서 가장 즐겁고 신나게 본 영화였다. 원래는 자려고 일부러 맨 구석 좌석으로 들어가서 담요까지 덮었는데, 보면서 제일 크게 웃었다.

심야상영 첫 영화가 끝나고 간식으로 피나콜라타맛 음료수와 찐옥수수(ㅋㅋ??)를 받았다. 먹으려는데 이번 제천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친구의 전화. 시간이 나니 술을 마시자는군. 이런 자리엔 빠질 수 없지. 가뿐하게 두번째와 세번째 영화를 포기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렇게 둘쨋날은 새벽 네시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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