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청난 신비에 접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지만 개인적인 이질감은 느끼지 않는다는군요. 그는 누미너스가 <총체적 타인>이라고 생각했고 인간은 그 총체적 타인에 대해 완전한 경이감으로 답한다고 주장했어요. 종교인들이 성스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바로 이런 걸 전하려 한다면 저도 공감할 수 있어요. 마침내 신호를 듣게 되었을 때 저도 바로 이런 느낌을 가졌거든요. 모든 과학도들이 그런 경이감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중략)
제 생각은 이래요. 관료화된 종교들은 누미너스를 직접, 마치 6인치 망원경을 통해 관찰하듯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미너스란 이런 것이다라고 머릿속에 집어넣어주려 해요. 누미너스가 종교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그런 관료화된 종교를 따르는 사람과 혼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서 과연 누가 더 종교적이겠어요?" (1권, 212p)
오랜만에 읽는 칼 세이건의 책이다. 이해도 못하면서 책에 실린 우주여행 일러스트가 좋아 무작정 <창백한 푸른 점>을 집어들었던 것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무렵이니 칼 세이건의 글을 거의 십몇년 만에 다시 접하는 셈이다. 칼 세이건은 천체물리학자일 뿐 아니라 <코스모스>등의 TV 방송, 과학책 저술 등 다방면에서 과학대중화에 힘쓴 것으로 유명한데 <콘택트>는 그가 평생 애착을 가지고 뛰어들었던 SETI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비록 표지는 촌스럽지만(밀레니엄 시절의 정취를 그대로 가직한 제목의 폰트를 보라!) "과학자가 쓴 과학소설"이라는 추천평에 이끌려 집어들었다.
과학자가 쓰는 과학소설은 아무래도 이야기의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건지, <콘택트>는 다른 책에서 느끼지 못한 촌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썼을 때의 어색함이라고 하면 되려나. 어떤 등장인물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 말을 하게끔 만드려 억지로 나타난 것 같고, 어떤 등장인물은 소설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뿅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이 소설의 진행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지만(잘해봐야 거치적거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가끔씩 눈에 띄기는 한다. 다른 책들은 안 이랬는데, 소설 쓰기는 좀 다르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칼 세이건의 고민이 들리는 것 같다면 나의 망상인걸까.. ㅋㅋ
물론 과학자만 표현할 수 있는 소설의 매력은 더욱 크다. 외계에서 수신한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하드SF적 재미가 그렇고("위상변조 쪽은 체크해 봤어요?"같은 대사), 아마 칼 세이건이 직접 겪었을 과학계와 종교-정치계와의 이해관계와 갈등, 세세하게는 여러 대학원생 독자의 심금을 울릴 지도교수와의 마찰같은 부분이 그렇다(한번 정도는 다들 자기 지도교수를 죽이고 싶어하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토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주인공 엘리의 입을 빌려 칼 세이건은 신비함의 종교적 개념인 '누미너스'를 과학에 대입한다. 이성적 설명의 범위를 벗어나는 신비야말로 과학자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이 아닌가. 불규칙하게 보이던 세계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간결한 방법을 찾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우주의 광경을 보았을 때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과학이 사람으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면 지금의 종교는 누미너스의 피상적인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이 칼 세이건의 말이다.
그러한 시선이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내가 그의 책을 읽었으니 내 생각이 바로 칼 세이건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 아닐까. 책 내용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의식적으로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걸까.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우주선 탑승자가 되어 은하의 중심으로 몇 만 광년의 여행을 하게 되고,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죽은 아버지이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만난 주인공은 지구로 돌아와 늙은 어머니와 계부를 만나게 되고, 은하와 우주를 다루던 이야기는 엘리의 개인사로 줄어들어 마침표를 찍게 된다. 사람은 먼 우주를 볼 수 있지만 결국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이라는 좁은 소우주의 구성원으로 보내게 되고,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까닭이다.
<콘택트>는 1985년에 쓰여졌고, 칼 세이건은 1996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일년 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콘택트>를 영화화했고,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 엘리 역을 맡았다. 영화를 찍을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 여섯이었는데, 지금 봐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그 10년 사이 세상은 변했다. 칼 세이건의 예측과는 달리 소련은 붕괴되었고, 미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대신 또다른 (성추문을 일으킬 정도로 정력적인) 남자를 대통령으로 맞았다. 무엇보다도 SETI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찾을 수 없었다. 외계인과 교신하겠다는 한 과학자의 꿈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한 권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로 남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었다. 칼 세이건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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