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메들레이드(2) 축제의 시작 - 0910 with guitar


비록 나는 9개월 남짓밖에 살지 않았지만, 1980년대는 확실히 멋진 시기가 맞는 것 같다. 1980년대는 멋진 잡탕의 시대였고, 다양성이 살아 있었고 장르가 뒤섞였으며 새로운 조류의 음악이 출현했다. 한 쪽에서 전자음과 신서사이저가 영역을 넓혀갈 동안 다른 쪽에서는 영미권을 넘어선 전 세계의 음악이 소개되었다. 토킹 헤즈가 월드비트를 섞은 <Remain in Light>를 멋지게 성공시킨 해가 바로 1980년 아니었던가.
워매들레이드도 이 때의 유산에서 태어난 페스티벌이다. 월드 뮤직을 소개한 뮤지션으로는 토킹 헤즈의 데이빗 번과 함께 제네시스Genesis의 멤버로 잘 알려진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이 유명한데, 그는 다양한 문화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워매드WOMAD,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라는 단체를 만든다.
첫번째 워매드 페스티벌은 1982년 영국에서 열렸는데, 흥행에 실패해 엄청난 적자를 낸다. 심지어 피터 가브리엘은 적자를 메꾸기 위해 제네시스와 재결성 콘서트를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역시 밴드 재결성의 가장 큰 이유는 돈이지!). 그 이후로 페스티벌은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고, 지금은 영국을 비롯하여 아부 다비, 뉴질랜드, 애들레이드까지 전 세계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애들레이드 보타닉 파크Adelaide Botanic Park는 큰 나무와 풀들이 곳곳에 우거진 평화롭고 넓은 공원이다. 워매들레이드가 열리는 사흘 동안 34 헥타르의 널따란 부지에 총 일곱 개의 스테이지와 여러 설치 미술 부스,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식당과 상점들이 열리게 된다. 말이 34 헥타르지 공원은 정말로 넓어서 우리는 입구를 지난 후에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페스티벌 사이트가 너무 넓어서 그런지 방비가 허술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펜스를 넘어오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아! 우리도 표 사지 말걸!”). 한참을 사람들을 따라 걸었는데도 조용해서 축제가 열리긴 하나 의심될 무렵 드디어 메인 스테이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떠올리듯, 중요한 공연이 열리는 메인 스테이지의 모습이 페스티벌의 첫인상 아닐까. 워매들레이드의 메인 스테이지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조가비 모양이 지붕이 인상적이었고, 입구에서 적어도 10분은 들어가야하는 공원 깊숙한 곳에 숨겨진 탓에 정말로 바닷속에 숨겨진 진주조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하는 순간 스테이지 위에서는 개회사가 낭독되고 있었고, 곧 첫번째 공연이 시작되었다.

2010년 워매들레이드의 문을 열어젖힌 첫 번째 팀은 야마토, 일본의 고수들YAMATO, the Drummers of Japan이라는 타악 그룹이었다. 여럿이 모여 다양한 크기의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마치 16인용 '북의 달인'을 플레이하는 것 같다. 타악기 연주가 오프닝 퍼포먼스라니 새삼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와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앞으로 나흘간 이 공원에서는 미국, 핀란드, 그리스, 멕시코, 서사하라, 알제리,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전 세계의 음악들이 울려퍼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넓고 들을 음악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주로 듣는 음악의 95퍼센트는 서구의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들의 편견을 그대로 담아낸 단어 아닌가. 팝이니, 락, 알앤비 같은 여러 장르의 이름에 가려 우리가 미처 들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음악은 얼마나 많겠는가.
세상에는 들어볼 음악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의 백분지일도 접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들어왔건만 아직 들을 노래가 이리 많이 남았다는 것이 좌절스러웠고, 아직도 평생 들을 좋은 음악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다. 워메들레이드에서 접하는 음악들은 나에게는 신세계였고, 정말 단 하나의 공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이끌고 이곳 저곳의 스테이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알제리에서 온 카멜 엘 하라치Kamel el Harrachi의 샤비(Chaabi)를 들었고, 곧이어 힙노틱 브라스 앙상블Hypnotic Brass Ensemble이 연주하는 신나는 관악 연주를 들었다. 탄두리 카레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3 스테이지(좀 멋있는 이름을 붙이지 3스테이지가 뭐냐 3스테이지가...)에서 벌어지는 칼렉시코Calexico의 공연을 구경했다.


가을로 접어드는 초입이라 그런지 해가 지니 날씨가 쌀쌀하다. 곧 느끼하게 생긴 남자들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오더니 악기를 집어든다. 팔을 잡고 곁에 서 있던 여자친구는 실로폰을 치는 저 남자는 눈빛이 느끼하고, 기타리스트는 길러놓은 구렛나루가 느끼하고, 보컬은 목소리가 느끼하다고 불평한다. 아니 내가 보기엔 공들여 잘 길러놓은 구렛나루인데!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에 서있는 도시의 이름이 시사하듯, 칼렉시코는 다양한 뿌리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루츠부터 마카로니 웨스턴, 재즈, 마리아치와 테하노에 이르는 라틴 사운드에, 심지어 포스트락까지 섞기도 한다. 술을 어느 정도로 마셔야 컨츄리랑 포스트락을 섞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결과물이 꽤나 괜찮다는 것이다. 밴드의 느끼함을 불평하던 여자친구도 어느 순간부터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고, 나도 그녀의 손을 잡고 이 놀라운 음악적 칵테일을 감상했다. 페스티벌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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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Two Silver Trees", Cal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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